메뉴 건너뛰기

파파스윌

게시판

AA

나는 왜 텃밭교사가 되었는가...


2012년 봄, 사랑하는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저에게 “아파트 뒤에 채소 심고 가꾸는 농장이 있더라. 거기 가서 마음을 붙여봐라.”라며 남편이 던지듯 지나간 말에 ‘텃밭농사’가 뭔지도 모르고 겁 없이 시작했습니다. 호미는 머리털 나고 처음 잡아 보는지라 뭘 심어야 하고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막막하던 저에게 김포 도시농부학교 홍보 현수막은 제 삶의 이정표를 바꾸었습니다.

 

아직 어린 초등학생 아들과 늦은 밤 시간에 도시농부 수업을 다니면서 세상을 치유하는 것은 자연이며, 그 위대한 자연 속에 우리가 취하며 살아야 하는 하늘이 주신 절대 중요한 마음들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것들, 그 먹거리들을 키워내는 땅과 물, 공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각이 어때야 하는지 등등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신바람이 나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텃밭 교사회에 입성하고 그 안에서 엄선덕 이사장님을 만납니다. 사실은 저와 도시농부학교 입학 동기지만 잘 모르고 지내던 사이였고 교사 양성 과정 발표회를 위해 제가 어렵게 만들었던 PPT를 낱낱이 지적하셨던 분이지요. 음. . . . . . 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1432601622_1.jpg

 

2013년 이른 봄, 인상이 썩 좋지 않았던 그 분이 제게 전화를 해 “‘밀알보호작업장’에서 감자를 심는다는데 장애인들만 있어서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같이 가 보겠느냐?” 하셨고 초보 농사꾼이 농사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이 앞서 그러겠다고 하고 ‘밀알’에 갑니다. ‘밀알’의 경험이 제 삶의 이정표를 바꾼 것은 아닙니다. 그 날 돌아오는 길에서, 그 분들은 보이는 대로 보고 보이는 대로 말하고 보이는 대로 사람을 대한다는 기억만이 문득문득 떠올랐을 뿐입니다. 그러나 ‘밀알의 경험’이 시작이 되어 도시농부로서의 길은 내 텃밭을 가꾸고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이 아닌 장애인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게 하는 지금으로 변화하여 이어집니다.

 

2014년 봄, 이제는 어느 정도 친해지고 인상이 좋은 사람으로 바뀐 엄선덕 이사장님께서 새솔학교 전공부 1학년 학생들과 농업 수업을 같이 하지 않겠느냐 제안하십니다. 학교 텃밭활동을 1년 계획으로 이끌어 본적이 없는지라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엄 이사장님과 함께 하기로 하고 다른 도시농부 형님들도 돕기로 하여 용기를 내었습니다. 홍성 홍동마을에 있는 ‘꿈이 자라는 뜰’을 찾아가 여러 가지 좋은 모델들을 보며 또 다른 즐거움과 계획들이 생겼습니다. 

 

1613407381_2.jpg


특수학교 새솔에서 처음 만난 전공부 학생들은 어느 별나라에서 온 사람들 같았습니다. 저에게 건네는 말이나 서로서로 나누는 대화가 여느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으니까요.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그들은 사실 이 암담한 세상이 싫어서 우리들을 상대로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발달 장애를 가진 우리 친구들은 사실은 장애가 없는데 세상을 달리 보고 세상을 달리 살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생각이 들곤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달랐습니다. 색깔이 다른 별들이 색다른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속에서 우리들은 만나 텃밭을 가꾸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손수건에 물을 들이고, 허브를 말리고, 꽃을 심고, 벌레를 잡고, 감자를 캐고, 옥수수를 따면서. . . . . .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냥 같이 노는 친구. . . . . .텃밭에서 만나 땀 흘리며, 몸을 움직이고, 맛있는 거 만들어 먹고, 이야기 하고, 그림도 그리고, 다음에 만나서는 또 뭐 만들어 먹을까? 뭐하며 놀까? 의논하고 헤어지는 그런 친구. . . . . .

 

새솔은 저에게 아름다운 청년들의 다른 세상을, 옷감에 물을 들이듯이 자연스럽게 천천히 알게 해 주었습니다. 자연스럽지만 제 생활이 많이 바뀌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제 삶을 만들어 나가는 방향도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전공부 학생들이 2학년이 되고 졸업을 하면 구직의 어려움과 불안정한 직장으로 고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즐겁고 행복한 농업 수업이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지 못하는 것에 큰 아쉬움과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2016년에는 수업의 방향을 조금씩 돌려 텃밭을 예쁘고 번듯하게 꾸미는 일보다는 자연을 이용하여 공예물을 만들어 판매도 하고 일자리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활동을 주로 하였습니다. 새솔을 오시는 분들이나 학교 관계자 분들 중 전공부 텃밭 활동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밭이 이게 뭐냐?’하고 돌아가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 해 새솔 텃밭을 하다 보니 부지런히 일하여 텃밭을 번듯하게 꾸미는 일은 전공부 청년들이 ‘농사는 힘들고 지겹고 재미없어’라는 생각만 갖게 하고 텃밭 농사로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을 알게 하거나 다른 삶을 고민하는 데 한 푼 어치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놀라운 능력을 가진 또 한분의 농사 조력자, 박연희 선생님 덕분이지요. 

 

1135057310_3.jpg

 

발달 장애인 청년들과 만나는 일이 이제는 색다른 일이 아니고, 사실은 그들이 이제 별로 별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제 그들은‘나를 유쾌하게 만드는, 하루를 살면서 나를 가장 크게 웃게 만드는 존재, 진정한 개콘들’입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그들이 세상에 이상한 어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연애를 하고, 뜨겁게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하면서 그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그렇게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우리와 함께, 우리로서 살아 나가도록 파파스윌과 끊임없이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저에게 복된 삶을 안겨준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 . . . . 감사합니다.


새솔 텃밭교사 황규숙

댓글 0
댓글 달기 Textarea 사용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이름 암호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파파스윌 소식 [땃터뷰] 김포시의 따듯한 마을공동체, 파파스윌 관리자 2018.09.13 1240
4 파파스윌 스토리 우리는 단순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채롭죠. 관리자 2018.09.13 492
3 파파스윌 스토리 지명이가 힘을 받는 시간, 장조림 관리자 2018.09.13 494
2 파파스윌 스토리 카페문이 열리고, 파파스윌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관리자 2018.09.13 537
파파스윌 스토리 내가만난 다른세상, 내가만난 레알천사 관리자 2018.09.13 538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